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제노사이드 방지 센터'를 이끌었고, 여러 수단 특사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평생을 "다시는 안 된다"는 한 문장에 바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전혀 다른 글을 썼다. 캐머런 허드슨은 담담하게 적는다. 수단에서 학살이 또 벌어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누구도 막으러 나서지 않는다고. 심지어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조차 드물다고.
수단의 전쟁은 2023년 4월에 터졌다. 정부군(SAF)과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가 이끄는 준군사조직 신속 지원군(RSF)이 권력을 두고 충돌했다. 40개월이 지난 지금, 1,4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집을 잃었다. 인구 5천만의 절반이 국제 원조에 기대어 목숨을 잇는다. 세계 최대의 피란 사태다. 여러 지역이 기근의 문턱에 내몰렸고, 이 전쟁은 지금 지구에서 민간인에게 가장 참혹한 분쟁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전쟁의 잔혹함은 처음이 아니다.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다르푸르의 대량 살상을 '제노사이드'라 불렀다. 그때 그 단어는 세계를 움직이는 구호였다.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의 학살에 국제사회가 이름을 붙였고, '다르푸르를 구하라'는 외침이 번졌다. 그 잔자위드의 후예가 바로 오늘의 ‘RSF’다.
'제노사이드'라는 말에는 무게가 있다
냉전이 저물 무렵의 법 해석은,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국제사회가 폭력을 멈출 의무를 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1994년, 르완다에서 학살이 벌어지던 때 워싱턴은 머뭇거렸다. 당시 국무장관 워런 크리스토퍼는 기자 앞에서 말을 더듬었다. 몇 건의 '제노사이드 행위'가 모여야 하나의 제노사이드가 되느냐고. 르완다와 이듬해 보스니아의 실패는 서방의 양심을 뒤흔들었다.
그 반성에서 '보호책임(R2P)'이 태어났다.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하거나 스스로 가해자가 될 때, 개입의 책임이 국제사회로 넘어간다는 원칙이다. 가해자를 심판할 국제형사재판소(ICC)도 그 무렵 세워졌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르는 사이, 그 원칙은 빛이 바랬다. 2011년 리비아 개입은 '보호'라는 명분이 정권 교체로 변질되며 불신을 샀다.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을 '레드라인'이라 못 박고도 끝내 손을 놓았다. 2016년 오바마는 "제노사이드 예방은 핵심 국익이자 도덕적 책무"라고 적었다. 그러나 오늘의 워싱턴은 그 문장을 지운 듯하다.
반복의 궤적은 뚜렷하다
전쟁 초기, 서부 다르푸르의 엘제네이나에서 RSF는 주민의 탈출과 구호품 반입을 함께 막았다. 2025년 1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그 낙인이 세계를 움직이리라 기대했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2025년 10월 26일, 북다르푸르의 엘파셰르가 무너졌다. 18개월 포위 끝의 함락이었다. 엘파셰르는 정부군이 다르푸르에서 지켜 낸 마지막 보루였다. 함락 뒤, RSF와 연합한 아랍계 민병대는 인종을 가려 사람을 죽였다.
UN은 단 사흘 만에 6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진상 조사단은 이미 이곳에서 '제노사이드의 길'을 보았다고 경고한 터였다. 예일대 인도주의연구소의 위성사진은 집집마다 벌어진 학살의 흔적을 담았다. 올해 UN 진상 조사단은 이 범죄가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세계는 침묵했다.
이제 차례는 중부의 엘오베이드다. 북코르도판의 상업 중심지인 이 도시에는 50만 명이 산다. 피란민 8만여 명도 이곳에 머문다. 이 도시는 18개월째 포위 아래 신음해 왔다. 2026년 1월, 엘오베이드 주민들은 드론에 쓰러진 이웃을 위해 모여 기도했다. 로이터의 사진 한 장에 그 장면이 남아 있다. RSF는 도시를 다시 에워쌌다. 지난 6월 한 달에만 드론 27차례가 발전소와 연료 저장고, 물 펌프를 때렸다. 불이 꺼지고 물이 끊겼다.
7월 3일, UN 인권 최고 대표 폴커는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우기가 닥치면 도로는 진창으로 변해, 도시를 떠나는 일조차 불가능해진다. 이를 안 정부군은 7월 27일 카르툼으로 이어지는 사다라트 고속도로를 되찾았다. 그러나 몇 시간 만에 RSF의 보복 드론이 날아들었다. 드론은 이 전쟁의 새 얼굴이다. 양측 모두 무인기를 띄운다. 5월에는 카르툼 국제공항이 드론에 맞아 모든 항공편이 멈췄다. 올해 초 넉 달 동안, 민간인 사망의 80퍼센트 이상이 드론 탓이었다.
말은 넘쳐도, 행동은 없다.
영국 대표 엘리너 샌더스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RSF가 엘파셰르를 "강간하고 약탈하고 살해하며 지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엘오베이드가 참극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 UN 진상 조사단은 엘파셰르에서 본 징후가 엘오베이드에서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도시를 에워싸고, 기반 시설을 부수고, 바깥세상과의 연결을 끊는 수순이다.
모나 리시마위 조사위원은 엘파셰르의 교훈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하며,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폭력의 악순환을 부른다고 짚었다. 생존자들은 가족의 주검이 놓인 방에서 겪은 일을 증언했다. 차마 옮기기 어려운 말들이다. 7월, G7 외무장관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RSF의 엘오베이드 포격을 규탄하고, 이웃 나라들에 전쟁 지원을 끊으라 촉구했다. 그러나 3년간 쏟아진 성명 어디에도, 규탄을 넘어선 행동은 없었다.
이제는 '제노사이드 행위' 하나가 아니라, 복수의 제노사이드가 이 전쟁을 이끈다. 그런데도 왜 세계는 움직이지 않는가. 허드슨은 '전략적 모순'을 지목한다. 수단은 넓고 자원이 많아 이웃들이 그 몫을 노리며 싸움에 끼어들지만, 미국과 유럽에는 정치적 자본을 쏟을 만큼 가깝지도 절박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워싱턴은 앙카라와 카이로, 리야드와 아부다비의 손을 빌린다. 그 나라들은 무기를 팔고 금을 캐내며 양쪽 모두의 전쟁을 떠받친다. 그러면서도 '이름 없는 외부 세력'이 수단의 비극을 부추긴다고 개탄한다. 자신들이 바로 그 세력이면서 말이다. 저자는 이달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의 역량을 벽돌 하나하나 허물겠다고 공언했다는 점도 짚는다. 학살의 가해자인 RSF를, 정작 미국의 중재자들이 협상 테이블로 부른다는 사실도. 그런 합의가 전쟁을 잠시 멈출지는 몰라도, 다음 전쟁의 씨앗을 심는 일이 되리라고 허드슨은 경고한다.
‘결코 다시는(Never Again)'.
우리는 그 말을 아우슈비츠 앞에서, 르완다의 교회 앞에서, 스레브레니차의 숲 앞에서 되뇌었다. 그때마다 다음에는 다르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그다음이, 지금 엘오베이드의 하늘 아래 와 있다. 평생 학살을 막는 일에 몸담았던 한 사람이, 이제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몇 번의 제노사이드가 쌓여야, 제노사이드를 막는 일이 다시 '국익'이 되는가. 나는 그 물음을 오래 곱씹는다.
오늘도 수단의 어느 도시에서는, 이름조차 세상에 닿지 못한 사람들이 쓰러진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구호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먼 땅의 고통이라 하여 남의 일로 미뤄 둘 때, 그다음 차례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다시는"이라는 맹세는, 대체 언제를 위한 약속이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