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신앙을 만나는가 - 26.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키는가

고통은 성장의 학교가 아니라 질문의 현장이다

욥의 친구들이 실패한 이유 : 위로가 설명으로 변할 때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은 어떻게 버티는가

폭풍과 침묵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고 있는 욥의 모습은, 고통 한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질문하며 신뢰를 놓지 않는 인간의 믿음을 상징한다.

26.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키는가

      -  욥은 왜 끝까지 질문했는가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이번 일을 통해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말하는 사람은 위로를 의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듣는 사람에게 그 말은 때로 또 하나의 폭력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 질병으로 일상이 무너진 이에게, 실패로 삶의 방향을 잃은 이에게 고통의 의미를 너무 빨리 설명하는 일은 상처 위에 해석을 얹는 일일 수 있다.

 

그렇다면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키는가. 욥기는 이 질문에 단순히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다. 욥기는 오히려 고통이 인간을 얼마나 깊은 혼란으로 밀어 넣는지,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 말하고 묻고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욥은 고통 속에서 조용히 체념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끝까지 묻는다. 항의하고 탄식하고 자기 결백을 말한다. 놀라운 것은 성경이 그 질문 자체를 불신앙으로 몰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욥의 질문은 현대인의 질문과 닮아 있다. 왜 선한 사람이 병드는가. 왜 성실한 사람이 실패하는가. 왜 아무 잘못 없는 아이가 고통받는가. 왜 하나님은 가장 절박한 순간에 침묵하시는가. 욥기는 이 질문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인다.

 

욥기는 단순한 교훈담이 아니라 철학적 성격이 강한 지혜문학이다. 잠언이 대체로 “지혜롭게 살면 복을 얻는다”는 삶의 질서를 강조한다면, 욥기는 그 질서가 현실에서 항상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사실을 드러낸다. 욥은 의로운 사람으로 소개되지만 재산, 자녀, 건강을 잃는다. 사건의 표면만 보면 욥의 세계는 순식간에 붕괴한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설명하려는 사람들”이다.

 

욥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함께 앉아 침묵한다. 그 침묵은 훌륭했다. 그러나 그들이 입을 여는 순간 위로는 판결로 변한다. 친구들은 고통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욥의 죄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 정의로운 하나님은 악인을 벌하신다. 욥은 벌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욥은 악을 행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논리가 신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통받는 사람을 두 번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첫째, 설명되지 않는 고통을 죄의 결과로 몰아간다. 둘째, 살아 계신 하나님을 기계적 보상 체계로 축소한다. 욥기는 이 대목에서 냉정하다. 하나님을 변호한다는 명분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정죄하는 언어는 참된 신앙이 아니다.

 

현대 심리학에는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개념이 있다. 큰 상처나 위기 이후 삶의 의미, 인간관계, 자기 이해, 영적 감각이 깊어지는 경우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단서는 “고통이 자동으로 성장으로 이어진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장은 고통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통 이후의 씨름, 해석, 관계, 지지, 시간, 정직한 애도 속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욥기의 통찰도 여기에 가깝다. 욥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고통을 선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겪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 실망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말한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 답을 요구한다. 이것이 욥의 신앙이다. 질문 없는 신앙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도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는 신앙이다.

 

성숙은 눈물을 설명하는 능력이 아니다. 성숙은 눈물 속에서도 인간이 더 잔인해지지 않는 것이다. 자기 상처 때문에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를 겪었기에 실패한 사람을 쉽게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상실을 통과했기에 상실한 사람 곁에서 성급한 조언 대신 오래 머물 줄 아는 것이다. 욥이 보여 주는 성숙은 승자의 낙관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자의 깊이다.

 

욥기의 가장 어려운 지점은 하나님의 침묵이다. 욥이 울부짖을 때 하나님은 즉시 설명하지 않으신다. 인간은 대개 고통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이유를 알면 견딜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기에서 하나님은 고난의 원인을 세부적으로 해명하지 않으신다. 대신 폭풍 가운데 나타나 창조 세계의 광대함과 인간 지식의 한계를 묻는 질문을 던지신다.

 

이 응답은 차갑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욥기의 초점은 “네가 모른다”는 굴복 강요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은 욥을 버려두지 않으신다. 침묵 끝에 말씀하신다. 그리고 욥을 정죄한 친구들의 말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으신다. 욥은 모든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신앙은 모든 사건의 이유를 손에 넣는 일이 아니다. 신앙은 이유를 모르는 시간에도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가능성을 붙드는 일이다. 여기서 인내는 감정의 마비가 아니다. 인내는 질문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힘이다.

 

오늘의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욥의 자리에 선다. 갑작스러운 사별과 이별, 암이나 만성질환의 진단, 사업 실패, 실직, 관계 붕괴, 자녀 문제, 공동체의 배신이 한 사람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이때 사회는 빠른 회복을 요구한다.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쉽게 오간다.

 

그러나 욥기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회복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슬픔은 일정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곧 애도는 죽음뿐 아니라 건강, 직업, 관계, 꿈, 삶의 정상성 상실 앞에서도 찾아올 수 있다. 그러므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해석의 속도가 아니라 동행의 깊이다.

 

교회와 공동체도 욥의 친구들이 걸었던 길을 반복할 수 있다. 누군가 아프면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말하고, 누군가 실패하면 기도가 부족해서라고 말하고, 누군가 오래 슬퍼하면 감사가 없어서라고 말하는 순간 공동체는 위로의 장소가 아니라 심판의 법정이 된다. 욥기가 오늘의 신앙 공동체에 주는 경고는 분명하다. 고통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설명이 아니라 함께 앉는 것이다.

 

욥은 답을 얻기 위해 질문했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질문했다. 질문은 불신앙의 반대편에만 있지 않다. 때로 질문은 신앙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묻지 않는다. 더 이상 관계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항의하지 않는다. 욥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말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끝까지 질문했다.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키는가. 욥기의 대답은 조심스럽다. 고통은 사람을 자동으로 성숙하게 하지 않는다. 고통은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고, 냉소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침묵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진실을 말하고, 쉬운 정죄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질문하며, 누군가의 곁에 오래 머무는 법을 배운다면 고통은 인간을 더 깊은 자리로 이끌 수 있다.

 

따라서 욥기의 신앙은 “아프지 않게 해 달라”는 신앙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픈 시간에도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신앙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욥의 인내다. 침묵 속에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말하는 인내, 그리고 상처 입은 뒤에도 더 따뜻한 인간으로 남으려는 인내다.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6.07.09 09:07 수정 2026.07.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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